2009년 03월 25일
역사 비틀기? 하려면 이렇게 하라. 국풍 1135!

역사 비틀기? 하려면 이렇게 하라. 국풍 1135!
국풍 1135는 역사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정사를 따르지 않는다.
저자 박희철 작가는 자신의 첫 번째 작품인 이 작품을 통해서 상당히 재미있는 시도를 하였다.
기존에 역사적으로 알려진 사실을 적당히 비틀면서, 새로운 시각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한 것이다.
사실 맨 처음 필자가 이 소설에 흥미를 느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는데, 먼저 정사와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의 창조를 시도한 이 작품이 과연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을지가 매우 궁금하였고, 또한 어느 정도까지 참신한 생각을 내놓았을 지가 너무 궁금하였다.
그리고 1권을 다 읽은 현재 시점에서 필자는 상당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일단 이 소설의 완성도는 기대 이상이다.
저자의 처녀작이라는 것을 굳이 감안하지 않더라도 무리 없게 읽힐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어느새 이 소설의 내용을 상당 부분 실제 역사이지 않았을 까 의심하고 있을 정도로 이 소설의 완성도는 상당한 수준이다.
사실 이 국풍 1135는 엄밀히 말하자면, 픽션이 가미된 소설이다.
역사 소설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정통 대하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이유 또한 그러한 요소들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대개 그런 소설들은 픽션의 개연성에만 치중하다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러한 난점을 해결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이 소설이 가지는 중요한 매력중 하나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고려 1135년. 이른바 묘청의 난이 일어났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상으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대사건인 묘청의 난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저자는 새로운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이 사건을 일반적인 견해와는 다른 시점으로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일단 그 시도 자체는 상당히 신선했다.
먼저 역사 속에서 김부식과 묘청이라는 두 거목에 묻혀버린 정지원이라는 인물을 완연히 전면으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하였으며, 또한 역사와 달리 묘청과 정지원을 서경파라는 하나의 굴레에 놓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해석을 해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시도들이 어색함이 없으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책 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이 책의 매력은 정작 글의 주인공은 분명히 다른 사람임에도 그 주변 인물을 책 속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로 설정하면서, 실제로 보고자 하는 인물들, 즉 정지원과 김부식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다각도로 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시도들로 인해서 독자들은 마치 자신이 책 속의 시대에 들어가서 제 3자의 입장에서 정지원과 김부식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어준다.
즉, 이런 시도들이 한데 묶여서 픽션이 가미되었음에도 가독성을 떨어뜨리지 않는 중요한 장치로써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은 고려 시대에 급격한 변화를 불러왔는데, 그 하나는 이로 인해서 고려 시대의 두 축 중 하나였던 서경 세력이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 사건들(정확하게는 묘청의 난)을 계기로 문신들의 세력이 급속히 팽창하여, 훗날 무신 정변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고려가 고구려의 계승자로써 존재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었던 서경 세력의 존재가 이 시점부터 급격히 쇠퇴하고, 나라의 기반이 되어주었던 무신들이 힘을 잃으면서 본격적으로 고려가 제 색채를 잃고 표류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굵직굵직한 두 개의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이 소설은 그 핵심 인물일 수 있는 이자겸과 묘청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고 있다.
이 소설의 핵심적 주체는 누가 뭐라 해도 정지원과 김부식이며,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역사적으로 묘청과 같은 노선을 걸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정지원이라는 인물만을 따로 끄집어내어 새로운 가정 하에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새로운 흥미 유발 요소를 가미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정지원은 본래 정지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천재 시인이자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정지원이라는 이름은 본래 아명이며, 그의 시인 송인은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한 시이다.
그가 김부식의 질투로 인해서 젊은 나이에 김부식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상당히 유명한 사실이며, 실제로 그 원한의 계기가 한시 한 구절 때문이라는 것도 유명한 사실이다.
즉, 역사는 이미 이 둘을 세기의 라이벌로 인정하고 있었다.(정확하게 본다면 정사에서는 김부식이 정지원을 질투하였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정지원(정지상)은 묘청과 같은 노선을 걷는 서경파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으며, 묘청과 백수한, 정지원을 하나의 일파로 보는 것 또한 일반적인 견해였다.
하지만 이 소설은 김부식이 묘청보다는 정지원을 자신의 필생의 라이벌로 생각하였다는 가정을 세우고 있으며(한시 한 구절로 인해 질투심을 느껴서 죽였다는 것보다는 정치 라이벌로써 위협을 느껴서 죽였다는 이 가정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는 것은 필자 한 사람 뿐일까?), 묘청의 난 발발 시에 가장 먼저 그를 죽였다는 기록을 통해 그러한 가정을 역설적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묘청과 다른 입장임을 책의 서두에서부터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당시 서경의 분위기를 이 분화시켜, 고려의 또 하나의 심장이라 할 수 있었던 서경 인들의 주체적인 위상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역사는 많은 경우에 있어 승리자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정지원과 서경인 들은 실제 역사와는 달리 다소 저평가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이 사실이며, 그래서 저자의 이러한 가정들은 전혀 어색하지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거기에 봉심과 습명이라는 그 인물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픽션 소설이 간과하기 쉬운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 점(제 3자의 입장에서 보다 객관적이고 다각도로 주인공들을 분석할 수 있게 한 점)은 상당히 훌륭한 시도였다고 평하고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국풍 1135의 가장 큰 매력은 이런 여러 가지 장점들을 잘 버무린 저자의 글 솜씨일 것이다.
내용 자체의 개연성이 상당히 좋고, 흥미로운 사건들의 나열을 적절하게 배열해냄으로써 소설 자체로써의 흥미도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즉, 한마디로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역사 소설이라 자칫 딱딱해질 수도 있는 부분이 전혀 없으면서도 또한 내용 자체는 가벼움이 전혀 없이 진중하다.
진중한 가운데 재미를 찾는 데 성공한 소설. 이것이 국풍 1135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마치 김용의 영웅문과 같은 무협 소설을 읽는 느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필자의 과대평가일까?
하지만 필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실제로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1권에서는 이자겸을 상대하는 김부식과 정지원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1권은 비교적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정지원과 김부식의 신념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는 데 집중 하는듯한 인상이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제 3자인 봉심과 습명같은 인물들 또한 분명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그 시점 자체는 우유부단하지 않고 명쾌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직 2권은 읽지를 못했기 때문에 이 리뷰는 사실 최종 평가라고 보기에는 미흡한 측면이 있다.
이 소설의 무게 중심은 아무래도 1권보다 2권에 더 놓여있는 것으로 보이며, 2권에서 본격적으로 주인공들의 내적 갈등이 그려질 것 같기 때문이다.
이후 2권에서는 묘청의 난이 본격적으로 다뤄질 터이고, 그렇게 되면 본격적으로 정지상이 전면에 부각될 소지가 높은데,(실제로도 1인칭 시점으로 상당히 변화하면서 정지상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부각한다고 들었다.) 실제로 필자는 저자가 이 부분을 어떻게 그려내었을 지가 너무나도 궁금하다.
이것이 이후에 이어질 2권이 기대되는 이유이며, 이 2권을 본 후에야 필자가 비로소 진정한 리뷰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하지만 1권만을 읽고도 이 소설에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데, 그 이유는 역사에서 잊혀져가는 인물이었던, 단지 천재 시인으로써만 기억되곤 하던 정지상이라는 인물에 대한 재해석을 해냄으로써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점 때문이다.
그 방향성 제시만으로도 이 소설은 근래 읽었던 역사 소설 중 충분히 앞자리를 주어도 될 만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물론 2권을 읽고 필자 맘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역사는 사실이 분명히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지만, 때로는 이런 재해석들이 새로운 부분을 밝혀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by | 2009/03/25 03:18 | 이것 저것. | 트랙백 | 덧글(8)
2008년 08월 26일
꿈을 쫓는 자는 아름답다 -필리프 프티
꿈을 쫓는 자는 아름답다 -필리프 프티
1974년 8월 7일. 수직 411미터 110층짜리 건물 사이에서 한 사람이 줄을 타고 있었다.
언뜻 보아서는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그 사람은 그렇게 줄을 타고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도전을 하는 것에는 망설이고 주저하게 마련이다.
그 어떤 꿈이든 그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그러한 노력 위에서, 도전 위에서 비로소 꿈은 이루어진다.
그래서 도전하는 자는 아름답다.
인간은 누구나 꿈을 꾸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며, 바로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도전을 한다.
무모하든, 말도 안되든, 불가능하든 어찌 되었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언제나 도전은 필요 불가결하며, 이러한 도전 위에서 비로소 인생에는 의미가 부여된다.
그리고 필리프 프티는 외줄 하나에 자신의 꿈을 걸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줄을 탔다.
그렇다. 필리프 프티는 외줄 곡예사이다.
수많은 구조물 사이에서 줄 하나에 의존해 위험한 곡예를 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줄을 타면서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비로소 꿈을 이루기 위한 이상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상향을 위해서 그는 이러한 무모한 도전을 감행한 것이다.
세계 무역 센터 사이에서 외줄타기 공연을 하겠다는 진정으로 무모하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도전.
일반인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손가락질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그런 도전.
하지만 그는 순수하게 자신의 꿈을 위해서, 이상향을 위해서 그러한 도전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그 도전의 여정은 험난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애초에 불가능하고 현실적으로 말도 안되는 도전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프티는 그러한 험난함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그는 험난함을 즐겼으며, 그 험난함과 불완전함에서 오는 스릴을 사랑했다.
그런 험난함과 스릴 또한 자신의 꿈으로 향하기 위한 중요한 밑바탕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나의 이상향을 바라볼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두려움과 공포심을 이겨낼수 있었던 것이다.
프티는 이 책에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세계 무역 센터를 처음 대면하고 든 첫인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고.
하지만 그는 그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을 안은채 도전을 시작하였다.
“그래 불가능해. 그러니 시작하자.” 라는 되뇌임과 함께...
그는 꿈 하나만을 바라보며,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감행한 것이다.
그리고, 불가능함을 안은채 시작했기에 그의 준비과정은 더욱 치밀했다.
훌륭한 동료들(장 루이와 장 프랑수와와 같은)을 모았으며, 그들과 수차례의 탐방을 행하고 수많은 계획들을 만들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마지막 시나리오를 완성해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시나리오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완성되지 못했다.
섬세하게 준비하고, 수많은 오류를 거치면서 시나리오를 만들고 준비를 하였음에도 결국 완벽한 시나리오를 만들어내지는 못한 것이다.
결국 그와중에 한번의 실패를 거치고 말았고...
하지만 그는 결국 그 미완성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두번째 기습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그 기습은 시나리오의 미완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연이 겹치면서 성공으로 치달았다.(프티는 이 모든 것을 기적이라고 칭했다.)
83층에서 시작하기로 했던 시나리오는 우연한 기회로 인해서 104층에서 시작하게 되었고, 수많은 착오와 난관(하다 못해 줄설치조차 제대로 되지 못했다.)을 거쳤고, 실패가 거듭되었지만 결국 프티는 줄을 타는데 성공한 것이다.
아마도 그의 노력과 포기를 모르는 도전 정신이 미완성으로 점철된 시나리오의 불완전함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노력들에 힘입어 1974년 8월 7일.
1시간의 시간동안 필리프 프티는 뉴욕의 하늘을 수놓은 찬란한 별이 되었다.
사실 이러한 프티의 모험은 엄밀히 따져볼때 범법행위이다.
하지만, 그는 꿈을 가지고 말도 안 되는, 불가능한 그런 모험을 현실로 이뤄내었다.
그는 진정으로 목숨을 걸면서까지 이 일을 행하였고, 절대로 안 될 거라는 절망 속에서 결국 이 일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누가 있어 이런 그를 범죄자일 뿐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그의 이러한 도전이 결국 20세기 최고의 예술 범죄 사건을 만들었음을 상기할 수 있다면 말이다.
꿈을 쫓고, 이상향을 쫓아 결국 그 꿈을 이룬 필리프 프티.
그는 진정한 20세기 최고의 모험가일 것이다.
도전과 모험의 사나이. 자신의 꿈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나이. 플리프 프티에게 진심어린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도전을 사랑하고, 모험을 좋아하는, 가슴속에 꿈이라는 단어를 품고 사는 모든 분들께 이 책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를 추천하고 싶다.
이 책에는 진정한 그의 정신이 깃들어 있고,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덧 마음속에 감춰왔던 꿈들이 나래를 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필자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꿈을 쫓아 도전하는 자는 진정으로 아름답다.
# by | 2008/08/26 14:54 | 이것 저것.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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